
제작 : GONZO (2005년)
TV 시리즈 24화
총평
메인테마가 강한 작품을 좋아하는 본인의 성격에 무척 충실히 어필하는 작품이었다. 강한 스토리 외에도 참신한 설정이나 하드보일드한 매력이 작품 전체를 무척이나 맛있게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성인물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적당히 수위높은 선정적인 장면이나 폭력 씬을 넣기만 하면 끝인 줄 아는데, 진정 매력있는 성인물 애니메이션이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마무리도 깔끔해서, 오랫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수작을 보게 된 느낌이다.
스토리
카메라맨 사이가 타츠미는 권력계를 휘어잡고 있는 스이텐구의 비밀 클럽을 파헤치려다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신비의 소녀 텐노우즈 카구라를 만나 초능력을 얻고, 같이 도망치는 입장이 된다. 중년 카메라맨과 여고생의 사랑의 도피행각(?)이 작품의 중심 축이다.

위의 말은 거짓말이고, 사실 "스피드 그래퍼"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는 '돈'이다. 돈...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는 이상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일본은 돈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되는 세계다. 돈 때문에 어릴 적부터 파괴된 삶을 살아야 했던 스이텐구의, 평생을 건 돈에 대한 복수극이 작품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작품은 집요할 정도로 '돈'에 계속 포커스를 맞추어나가고 있다.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고 다이아몬드를 먹으며 박스에 현찰을 담아 빌딩을 가득 채운다. 심지어 땜빵용 총집편도 지난 사건들의 손익평가액을 계산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돈에 대한 복수의 일념에 평생을 걸었던 스이텐구는 과연 돈으로부터 자유로웠을까. 권력자를 이기기 위해선 권력을 잡아야 하고, 돈을 제압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 부모의 빚 때문에 인생의 파탄을 경험했던 스이텐구지만, 결국 그도 복수를 이루기까지는 다른 이들의 인생을 파탄내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화에서 폭파되어 록폰기에 흩날리는 현찰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설정
"스피드 그래퍼"라는 제목(빠른 촬영기법을 의미하는 듯)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사이가 타츠미는 열혈 카메라맨이고, 여기에 초능력이 더해져 사진을 찍는 물체를 폭발시키는 "폭촬"의 능력을 갖게 된다. 이 독특한 설정은 몇 가지 의미에서 매우 재밌다고 생각한다.
우선 카메라와 총기류의 유사성을 드러낸 것이 재미있다. 둘 다 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기기들이라는 점에서 느낌이 비슷한 데다, 이미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실제로 극중에, 전문가용 망원렌즈(?)를 추가 장착하여 화력을 높이는 부분이 나오는데 매우 그럴 듯 했다.) 두 기기 모두 사용할 때의 표현이 shot 이라는 것도 이러한 유사성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총기류(?)를 점검중인 사이가 타츠미
또 하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다. 사이가 타츠미는 사진기자로서 전쟁터 등 여러 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며 이른바 '시대의 눈'이 되어왔다. 한편 작중에서는 전쟁터보다는 사회의 비리와 부패를 고발하는 활동의 비중이 큰데, 그러한 의미에서 카메라는 기자의 '무기'이며, 그에게 '사진이 찍힌다'는 것은, 찍히는 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로 실제로 폭발 당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일 것이다.
캐릭터
스타일도 있고 멋진 개성을 지닌 각각의 캐릭터들은 "스피드 그래퍼"의 매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캐릭터의 매력이라 하면 역시 악의 축 -_-, 스이텐구를 빼놓을 수 없다. 악역 보스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면서도 이만큼 감정 이입이 되는 캐릭터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초반에는 인텔리 변태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중심은 그가 된다. 피눈물(?)을 몰고 다니는 그의 초능력 또한 스이텐구의 캐릭터 설정을 최대한으로 살려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둘째는 역시 긴자 히바리. 하드보일드한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약간은 정신나간 :) 캐릭터. 부하의 면전에 술냄새를 내뱉는 장면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그렇게 사이가를 쫓아다녔으면서 막판에 배신(?)하는 건 일견 이해 안되면서도 또 그녀 답기도 하다. 극중 상관의 말처럼 다리도 멋진 캐릭터.

기타
간혹 작화붕괴의 기미가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_- 하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비쥬얼을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무엇보다 각 캐릭터들의 디자인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어서 보는 내내 만족스러울 수 있었던 것 같다. 3D가 튀거나 하는 느낌도 그다지 들지 않았던 듯 하다. 암굴왕 때도 그랬지만 GONZO 라는 제작사는 점점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내놓고 있다.
한편 전체적인 완성도를 흐리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어색한 영어는 제발 좀 어떻게 해주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