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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만화판이 살려면 - 4. 대여점 [11]

만화판이 살려면 - 4. 대여점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만화판 살리기에 대한 토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주제인 '만화 대여점'에 대한 것이다. 수많은 논쟁이 오고 갔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인 만화 대여점. 이번 글에서 최대한 생각을 해보겠지만, 솔직히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가 보자!



1. 책을 사서 보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 중 일부는 "만화판이 살려면 만화책을 사서 보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절대 선이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도는 고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만화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했던, "작가는 만화를 만들어 독자에게 보여주고, 독자는 소정의 대가를 작가에게 지불한다"는 전제만 성립한다면 만화의 유통은 어떤 형태든지간에 상관이 없다.

책의 소유라는 형태의 장점은 언제든 최고의 해상도로 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많은 저장공간을 요구한다는 단점도 갖고 있다. 일부 독자들이 만화책의 소장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만화의 독자층에서 제외시킬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문제는 현재의 대여점 시스템은 그러한 소비자들에게 걸맞는 서비스이기는 하되, 만화판의 대 전제인 "작가는 만화를 만들어 독자에게 보여주고, 독자는 소정의 대가를 작가에게 지불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2. 온라인 만화방과 대여점

사실 대여 시스템은 기존의 대여점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라인 만화방도 있다. 온라인 만화방은 '작가에게 소정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점에 있어서 굉장히 긍정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온라인 만화방이 성장해서 기존의 대여점들을 대체해버리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바람직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재 온라인 만화방들이 "그다지 활성화된 시장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온라인이라는 편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몇 가지 요인이라면,
  1.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최신 인기작이 드물다. 대량계약이 용이한 과거의 대본소 만화들만 즐비한 느낌이다.
  2. 해상도가 부족하다. 글자가 잘 안보이는 경우도 많다.
  3. 온라인 결제방식의 한계로 인해 학생들이 즐기기 힘들다. (심지어 성인들도 결제방식이 귀찮아 외면하기도 함)
  4. 컴퓨터를 통해서만 봐야 하므로 컴퓨터 사용을 제한받는 학생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마지막 요인은 어쩔 수 없으니 무시하고, 2,3번은 미래에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혹은 4번도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 될지도?) 만약 2,3번이 해결된다면 시장이 커짐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1번도 해결될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만화방은 "긍정적인 형태의 대여 시스템"으로서 발전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단, 지금은 아니다. 위의 요인들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현금을 주고 만화를 빌려볼 수 있는 '대여점' 형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3. 저작권료 징수체제 도입의 어려움

대여점은 애초부터 만화판의 대 전제 위에서 "저작권료를 징수하는 체제"로 이루어졌어야만 했으나,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후에 대여점으로부터 저작권료를 징수하는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있었으나 대여점 측의 반발, 만화가협회의 반발(?) 등으로 모두 실행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만화가협회의 반발은 "대여점 징수체제를 도입한다면 대여점 자체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내용이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확실치는 않다.)

대여점 징수체제 도입에는 몇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는 지금껏 내지 않던 돈을 내야 할 때 나타나는 대여점 측의 '조세 저항'이다. 대의 명분이야 어쨌든 대여점을 운영하는 서민들에게는 '자기 돈을 빼앗기는 일'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여점의 수익을 그대로 두고 추가로 독자들에게서 저작권료를 징수한다면 가격 인상으로 인해 독자들이 대여점을 외면하는 형태의 조세 저항이 나타나게 된다. 고객의 수가 줄면 당연히 대여점은 수익이 준다. 최근의 불법 스캔본 유통 등과 맞물려 대다수의 고객들이 불법 다운로드 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4.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재의 책 대여 가격은 지나치게 낮은 감이 있다는 점이다. 10여년 전에 비해 책값은 수십%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대여 가격은 줄곧 300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번 형성된 가격대에 대한 관념이 계속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대여 가격이 오를 때가 됐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 적절한 시기에 전체적인 대여가 인상과 더불어 저작권료 징수체제를 시행해야만 한다. 즉, 독자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는 형태의 징수체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실현불가능 했으나 대부분의 물가가 오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요금 인상이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바람일 뿐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대여가가 500원이 됐을 때를 생각해보자. (※분배비율은 개인적으로 임의로 설정한 것으로, 현실적 요구에 따라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분배비율500원
저작권자10%50 원
출판권자10%50 원
독자(마일리지)10%50 원
징수기관1%5 원
대여점69%345 원


저작권료로 30%를 제해도 가격 인상으로 인해 대여점 측에 기존의 300원보다 높은 금액이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대여점에서 발길을 돌리는 고객들로 인해 실질질적인 총수익은 낮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매출 부수가 절반으로 준다고 가정하면, 대여점 측은 기존에 600원 벌던 것을 345원밖에 벌지 못하는 셈이 된다. 심할 경우 매출 부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존의 대여점들이 붕괴해서는 곤란하다. 대여점이 붕괴하면 단행본 판매시장이 취약한 한국 현실을 생각할 때 곧바로 출판사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이 정책은 대여점들이 붕괴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지원정책과 함께 진행되어야만 한다.

5. 대여점 지원사격 차원에서의 스캔본 일망타진 방안

대여점 지원정책의 하나로 스캔본에 대한 단속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 만화 등의 온라인 상에서의 저작권 위반행위에 대해 민간 법률업체를 통해 대량의 고소가 행해진 전례가 있는데, "저작권 위반행위 단속"이라는 대의 명분을 살리기보다는 "무조건 고소 후 합의금 뜯어내기"라는 식이 되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바 있다.

저작권 위반을 단속하려는 의도 자체는 정당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1)만화의 특정 장면 인용 등 가벼운 사안에 대한 무차별적인 고소, 2)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들에게 1차 경고를 통한 계도 등을 시도하지 않고 무조건 합의금만을 요구한 것, 3)그렇게 해서 얻은 합의금이 저작권자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는 점 등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저작권 위반 단속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1) 민간 법률업체가 아닌 공적기관이 일괄적으로 저작권 단속을 대행한다. 물론 기존처럼 민간업체에게 계속 단속을 맡길수도 있을 것이고 그걸 막을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에 비해 공적기관에 맡기는 편이 저작권자들이 막무가내 단속에 의한 욕도 덜 먹고 결과적으로 합의금도 더 많이 분배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 수행이 된다고만 하면 대부분의 저작권자들은 공적기관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같은 이유로 기존에 비해 좀 더 많은 저작권자들이 저작권 단속을 위탁하게 될 것이다. 단속의 파괴력을 위해 공적기관도 더 많은 저작권을 위탁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공적기관은 불법 업로더들을 색출한 뒤, 저작권 위반 사항을 고지하고 (물론 블로그 등에서의 가벼운 인용 등은 위반 항목에서 제외) 1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준다. 1개월 간 해당 업로더는 자신이 행한 저작권 위반행위들을 모두 삭제할 의무가 있다.

3) 만약 적발된 업로더가 1개월 이전에도 걸린 적이 있는, 즉 2차 위반자인 경우에 한해 고소를 하고 벌금을 부과한다. 벌금은 위반자의 죄목이나 자세, 신분 등에 따라 현실적으로 정하고, 필요할 경우 벌금 대신 합의금 형태를 취하여 전과기록을 면제한다.

4) 공적기관은 취득한 벌금에서 운영비용을 충당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해당 저작권자에게 분배한다.


사실 이러한 것은 대여점 정책 등을 떠나서 애초부터 시행 되었어야만 했던 부분이다. 어째서 지금껏 정부 부처가 이러한 단속에 나서지 않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6. 기타의 대여점 지원 방안

불법 스캔본 단속 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대여점이 살아남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가격이 높아진 대여점을 외면하는 소비자들이 대여점을 이용하도록 마음을 바꾸게 만들 방안도 딱히 없다. 그렇다면 세제감면이라든지 어떤 다른 형태의 이권을 주거나 하여 고객 감소로 인한 손실을 상쇄시켜줄 필요가 있다. 전체 계획의 현실성 문제를 놓고 볼 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직 딱히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분은 언제라도 의견 주시길.

7. 대여점 관리 시스템

한편 또 하나의 문제점은, "과연 대여점 측에서 대여 실적을 정확히 기록하여 저작권료를 내겠는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대여 실적을 줄여 저작권료를 덜 내려는 '세금 포탈'과 같은 움직임이 발생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집중식 관리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대여점마다 고객의 대출 상황을 관리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쓰는 대신, 이를 하나의 웹사이트의 형태로 인터넷으로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중앙집중식 관리 시스템을 쓸 경우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다.

관리조직 입장에서 :
    [+] 100% 확실한 대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저작권료 징수가 용이해진다.
    [-] 만약 시스템이 다운될 경우, 전국의 대여점이 영업에 지장을 초래한다.
대여점 입장에서 :
    [+] 별도의 관리시스템이 필요치 않다.
    [+] 미반납, 파손 등 신용이 불량한 고객을 파악하기 용이해진다.
    [-]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는 영업이 불가능하다.
고객 입장에서 :
    [+] 전국 어느 대여점을 이용하든 동일한 고객정보를 사용하며 동일한 마일리지가 누적된다.
    [+] 남는 운영기금을 이용한 각종 이벤트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전국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남는 문제는 과연 새 시스템을 대여점 업주들이 제대로 사용할 것인가, 즉 별도의 장부를 운용하는 방식 등으로 영업하여 저작권료 포탈을 꾀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대책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론>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여, 현재의 대여점 체제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작업 순서를 써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단 각 출판사는 "대여점 쇼크"에 대비하여 단행본 판매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가 고비를 버티지 못한다면 계획을 실행할 수 없다.
  2. 대여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상정한다. 법안과 더불어 추후 저작권료 징수체제가 도입될 것임을 대여점 업계에 주지시킨다. 대여점 업주들은 이 단계에서 영업을 계속할지 그만 둘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 단계에서 영세한 대여점 수가 어느 정도는 줄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3. 정부는 관계부처를 마련하여 저작권 위반행위 단속을 시작한다. 저작권 단속은 대여점들이 수익 증가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기간을 두고 파격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4. 저작권 단속이 실효를 거두는 기간 동안, 대여점 통합 관리 시스템을 마련한다.
  5. 전국적으로 대여권 징수체제를 시행한다.



나름대로 이리 저리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들 중에서 가장 답답하고 해답이 나오지 않았던 논제가 아니었나 싶다. 결론이라고 써놓았지만 아직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대여점 문제는 한국 만화판의 모든 문제점들이 하나로 얽혀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풀기 어렵다고 해서 마냥 뒤로 미룰 경우, 한국 만화계는 언제까지나 커다란 돌덩이를 매단 채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부족했던 부분이나 새로이 추가되어야 할 부분들이 더해져서 앞으로 언젠가 돌덩이의 매듭을 끊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by 안빈군 | 2008/08/29 20:36 | 창작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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