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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철인28호 극장판 - 백주의 잔월" 감상평 [5]

"철인28호 극장판 - 백주의 잔월" 감상평




총평

일반적으로 "철인 28호"라 하면 거대로봇물의 태동기를 장식한 작품으로서, '슈퍼로봇의 추억과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리라 기대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극장판 애니메이션 "철인 28호"는 그러한 관객의 기대를 철저히 깨고 '일본인의 추억'만을 물씬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시대를 넘어서 다시 부활한 철인 28호에게서는 바다속에 가라앉은 전함 야마토와도 같은 녹슨 군국주의의 냄새만이 났다.


스토리

기본적으로 모든 사건은 주인공 카네다 쇼타로 앞에 또 한명의 카네다 쇼타로가 나타나면서 벌어진다. 철인 28호를 능숙히 조종하는 그는 카네다 박사의 숨겨진 양자. 그는 철인 28호의 현재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어린 쇼타로라는 데 실망하지만, 일단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린 쇼타로의 형으로서 자리를 잡아간다. 하지만 점차 그의 의중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극이 진행된다.



거대 로봇물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겠지만서도, 일단 '거대한 힘'이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그 힘이 상대하는 '적'이 등장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구도가 바탕이 된다. 그럼 극장판 "철인 28호"에서의 '적'은 누구인가? 숨겨진 철인의 힘을 획득하려는 베라네이드 재단? 겉보기에는 그렇게 설정되어 있지만, (그리고 사실 30% 정도는 맞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의 논조 상으로 볼 때 철인 28호의 진정한 적은 '시대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제는 필요 없어진, 그저 위험한 폭발물일 뿐인 철인,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리 저리 몸을 맡겨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 사라지는 것 만이 마지막 남은 선택인 철인과 그러한 사실에 분노하는 카네다 쇼타로... 그래서 과거를 회상시키는 폐허에 오히려 환희를 느끼는 그이지만, 오히려 그 자신이야말로 진정 이제는 필요 없어진 존재였던 것이 아닐까?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십여년을 살다 현실에 복귀한 복귀병이라는 설정 자체가 그러한 그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다. 결국 과거의 망령 카네다 쇼타로는 철인을 포기하고 스스로 과거의 삭제를 택하면서, 어린 쇼타로에게 '너의 조종간으로 새 시대를 살아갈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철인 28호"라는 작품은 단순히 이제 시대가 변했음을 말하려는 진취적인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구도를 통해 잊혀져가는 과거의 '대일본'의 추억을 아름답게 묘사하려 애쓰는 전형적인 극우주의의 작태를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거대로봇물의 추억을 기대하며 이 작품을 관람한 많은 이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전후의 일본인들이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어째서 거대로봇물을 필요로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첨언

애니메이션 역사상에서 거대로봇물은 단순한 '장르'를 넘어서서 하나의 커다란 문화적 흐름, 독자적인 문화 코드를 형성하고 있다. 거대로봇물은 그저 유년기의 소년들이 좋아하는 판타지 아이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하나의 시대정신을 만들며 수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문화산업의 첨병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창작자들이 여전히 계속 우리만의 거대로봇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도 그런 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밑바탕이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우리만의 거대로봇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전에,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거대로봇은 왜 필요한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의 거대로봇은 어떠한 사상적 바탕 위에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PS. 작품 관람의 기회를 마련해준 '서울 애니매니아 영상제'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이와 같은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좀 더 홍보에 신경을 써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더 큰 바람이다.

by 안빈군 | 2007/11/26 22:21 | 만화/애니 | 트랙백(3)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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